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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크리에이터 성장기와 ‘업글 인간’

 

한때 자기계발은 직장인들이 성공하기 위해 해야 할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최근 주 52시간 근무 제도의 정착으로 워라밸, 소확행 같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 등장하며 ‘업글(Upgrade) 인간’이라는 신종족이 등장했습니다. 업글 인간은 ‘무작정 성공을 지향하지 않고 자신을 업그레이드하며 어제보다 나은 나를 지향하는 자기계발형 인간’을 뜻합니다. 
 
최근의 펭수 열풍을 보면 이 캐릭터의 성장기가 유튜브 시대의 1인 크리에이터들과 맞닿는 지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애초 EBS 캐릭터들과는 다르게 교육적인 캐릭터가 아니라 자기 욕망에 충실한 공감 가는 캐릭터로 설계된 펭수는 등장부터 남달랐습니다. BTS를 동경하며 그들 같은 우주 대스타가 되고픈 욕망을 가진 이 캐릭터는 유튜브의 1인 크리에이터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많은 일상 속 도전들을 거치면서 조금씩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주어진 도전 과제들이 ‘성공’ 하면 반드시 떠올리는 것들과는 사뭇 다른 일상적인 것들이었습니다. 펭수는 춤이나 노래, 비트박스에 도전하고 그림 그리기나 물건 팔기, 심지어는 미용실 인턴에 도전합니다. 성공을 위한 스펙과는 거리가 먼 취향과 취미에 대한 것들입니다. 그리고 이런 도전들을 통해 조금씩 자신을 업그레이드하며 영역을 확장해 간 펭수는 결국 그토록 꿈꾸던 BTS를 만나는 대세 캐릭터로 성장합니다.


‘업글 인간’, 일상을 업그레이드한다

펭수의 이런 성장기는 최근 MBC ‘놀면 뭐하니?’에서 유재석이 보여주는 성장기와 겹치는 면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릴레이 카메라’라는 새로운 실험으로 시작하더니 어느 날 갑자기 유재석이 드럼 비트를 배워 여러 곡을 탄생시키고 드럼 독주회를 하면서 ‘유고스타’라는 닉네임을 갖게 되는데 이건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이후 트로트에 도전해 ‘유산슬’, 라면 분식점에 도전해 ‘라섹(라면 끓이는 섹시한 남자)’, 심지어 하프 연주에 도전해 ‘유르페우스’라는 닉네임까지 얻었습니다. 어느새 유재석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는 부(副)캐릭터 부자가 된 것입니다. 유재석이 하는 캐릭터 도전 또한 스펙과는 그다지 상관없는 취미의 영역들이라는 점에서 펭수와 유사합니다. 벌써부터 레슬링 그레꼬로만형이나 클래식 지휘 같은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 이야기가 나오니까요.


어째서 대중들은 펭수나 유재석의 이런 일상, 취미의 도전에 빠져들게 된 걸까요. 사실 자기계발이라고 하면 먼저 떠오르는 건 어학을 배우거나 직무와 관련된 능력을 함양하는 어떤 노력들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업글 인간’이 말하는 자기계발은 다릅니다. 그것보다는 펭수나 유재석이 하는 것처럼 일의 영역과 상관없이 자신이 하고팠던 취미나 일상의 자잘한 노력 같은 것들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퇴근 후 정기적으로 하는 운동이나 피아노, 기타 같은 악기 배우기, 그림 그리기, 온라인 등을 통해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갖는 독서 모임이나 영화 감상, 하다못해 매일 계단을 올라 귀가하기 같은 것들을 업글 인간은 추구합니다.


업글 인간의 탄생은 최근 노동의 화두가 된 주 52시간 근무로 인한 환경 변화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제 퇴근 후 어떤 새로운 라이프를 추구할 것인가라는 색다른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일과 여가를 나눠 일 중심으로 생각하던 시대에 여가는 ‘스펙 쌓기’를 위한 시간으로 여겨졌지만 이제 ‘워라밸’을 추구하는 시대에 여가는 일 바깥에서 찾는 또 다른 나의 삶이 된 것입니다. 일의 세계가 어떤 거창한 성공을 목표로 하는 반면 여가의 세계에서 성장이란 작아도 분명하게 얻어지는 이른바 ‘소확행’을 목표로 합니다. 이 점은 업글 인간이라는 신종족이 어째서 자잘한 일상에서의 업그레이드에 만족하는가를 잘 보여줍니다. 


유재석이 부캐릭터를 늘려가듯

물론 유재석이 트로트 가수가 되어 노래를 발표하고 하프 연주자가 되어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했다고 해도 그가 프로라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자신의 새로운 가능성을 봤을 뿐이고 그 새로운 영역이 주는 신선한 자극을 통한 만족감을 얻었을 뿐입니다. 그러니 업글 인간은 프로라기보다는 즐거움을 얻기 위해 도전하는 아마추어리즘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영역만이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 자신을 던져 봅니다. 이런 관점은 우리가 일로서 한 사람의 존재를 규정하는 시각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습니다. 예를 들어 교수라고 하면 떠올리는 한 가지 이미지만이 아니라 그러면서도 요리를 취미로 가질 수 있는 또 다른 이미지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업글 인간은 그래서 한 사람을 하나의 일로만 규정함으로써 그 사람의 가능성을 제한해 왔던 그 관점을 깨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는 점점 어쩌다 시작한 작은 취미가 본래 해왔던 일들 대신 그 사람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게 되는 것을 낯설지 않게 목격하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는 스스로 하나의 소명이라는 직업관에 묶여 다른 가능성들을 막아 두며 살아 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유재석이 부캐릭터를 늘려 가듯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가는 업글 인간의 시대는 그래서 색다른 산업과 서비스의 변화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입니다. 


여가 경제는 더더욱 두터워질 것이고 일 바깥에서 만들어진 취미가 또 다른 사업으로, 나아가 산업으로 이어지는 흐름 또한 가능합니다. 단순히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경험이나 습관을 공유함으로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영역이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몇몇 전문가들과 프로들에 의해 주도되던 산업이 아니라 수많은 전문가 같은 아마추어들의 참여로 이뤄지는 산업을 업글 인간들이 주도해 나갈 것입니다. 스스로의 일상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에 행복해 하며.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