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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으로의 융합과 디지털 리더십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으로 점쳐지는 작금의 변화는 기술과의 융합을 의미합니다. 아이디어와 기술을 융합한 플랫폼으로서의 도전과 융합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 디지털 리더십이 필요한 것입니다. 변화를 준비하지 않으면 무너지는 오늘날, 기술의 리더십을 어떻게 구현해야 할까요.

 

브랜드 리서치 전문회사인 미국의 인터브랜드는 매년 9월에서 10월 사이 전 세계 글로벌 브랜드 순위를 발표한합니다. 지난해 인터브랜드가 발표한 세계 글로벌 브랜드를 살펴보면 1위 애플, 2위 아마존, 4위 구글, 14위 페이스북 등 플랫폼 비즈니스로 세계 톱 브랜드가 된 기업이 상위에 랭크되었습니다. .

이 네 회사의 기업가치를 살펴보면 9월 22일 기준 애플 2조 3700억 달러, 아마존 1조 6900억 달러, 구글 1조 8600억 달러, 페이스북 1조 200억 달러로 이들의 시가총액을 합하면 총 6조 9400억 달러(약 8210조원)에 달합니다. 한 국가의 GDP와 비교해도 미국, 중국 외에는 필적하는 곳이 없을 만큼 엄청난 액수입니다. 어떻게 2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세계 톱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요.

이들은 2008년 이후 브랜드, 소매유통, 검색, 소셜미디어 분야에서 역사상 그 어떤 기업도 생각하지 못한 아이디어를 플랫폼 위에서 ‘가치’로 구현했으며 투자와 집중, 확산 노력으로 단기간에 누구도 넘보지 못할 세계적인 플랫폼으로 부상할 수 있었습니다. 뉴욕대 경영대학원 교수이자 ‘플랫폼 제국의 미래’의 저자 스콧 갤러웨이가 말한 것처럼 플랫폼 제국을 구축한 것입니다.

디지털 시대에 플랫폼의 가치는 바로 고객의 데이터에서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들은 고객 관련 데이터를 바탕으로 빅데이터를 확보했고 데이터 분석 알고리즘을 통해 고객의 니즈를 새롭게 이끌어 갔으며 인공지능 기술을 적용해 비즈니스를 확장해 나갔습니다.

그 어떤 기술기업보다 앞서서 자동화와 로봇화를 구축하고 대규모의 투자를 받아 단기간 세계적인 유통망을 통한 공급 판매를 감행한 블리츠스케일링(Blitzscaling) 전략 덕분이었습니다. 블리츠스케일링은 기습 공격을 의미하는 ‘블리츠크리그(Blitzkrieg)’와 규모 확장을 의미하는 ‘스케일 업(Scale up)’의 합성어로 불확실한 상황에서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엄청난 속도로 회사를 키워 압도적 경쟁우위를 선점하는 기업의 고도 성장 전략을 말합니다.

그리고 COVID-19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전 세계가 통제 상태에 놓이게 되면서 이들의 플랫폼 비즈니스는 더 큰 기회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들의 기업가치는 COVID-19 이전인 2019년 4월 3조 2500억 달러에서 2년 5개월여 만에 2배 이상 성장했습니다.

이제는 각자의 주력 분야를 벗어나 서로의 비즈니스 영역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소매 유통이 대표적인 예로 구글, 페이스북은 이미 아마존에 도전장을 내놓은 상태입니다. 즉 플랫폼에 쌓인 데이터를 중심으로 다른 분야라도 아이디어와 기술의 융합으로 도전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패션기업이 아닌 디지털 디자인회사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원칙은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그에 맞는 기술을 융합해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으로 정의를 내리고자 합니다. 이젠 우리 주변을 돌아봅시다. 처음부터 디지털 플랫폼으로 비즈니스를 시작한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과 달리 전통적으로 해왔던 기존의 비즈니스에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시도해 성공적으로 변신한 기업들도 있습니다. 패션업계의 버버리가 대표적입니다.

올해로 창립 166년이 된 버버리는 트레이드마크인 트렌치코트로 글로벌 명품 브랜드의 명성을 떨쳤으나 2000년경부터 쇠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전통만을 고수하다가 중노년 브랜드로 전락한 것입니다. 향수, 시계, 인테리어 등 새로운 사업으로 만회해 보려고 했지만 정체성의 혼란만 가져오면서 더욱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버버리는 2015년 가장 빠르게 성장한 명품으로 선정되고 2018년에는 디지털 혁신을 성공적으로 추진한 기업으로 세상에 발표됩니다. 2005년 1조 1000억 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4조 2500억 원으로 300% 이상 성장했습니다. 버버리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그리고 기술과 거리가 먼 패션업체가 어떻게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통해 성공했을까요.

그 해답은 2006년 CEO로 취임한 안젤라 아렌츠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는 CEO가 되자마자 회사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파악한 후 애플과 스타벅스의 전략을 도입해 노쇠하고 낡은 이미지의 버버리를 젊은 감각의 프리미엄 브랜드로 탈바꿈시키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이를 위해 “버버리는 패션기업이 아니라 디지털 디자인회사”라고 선언하고 ‘완전한 디지털 버버리(Fully Digital Burberry)’ 전략을 발표했습니다.

먼저 조직구조에 변화를 단행했습니다. 패션업체에서 가장 중추적이고 입김이 센 디자인팀과 마케팅팀의 주도 아래 프로젝트가 진행되어 오던 관례를 깨뜨리고 최일선에 IT팀을 배치해 디자인팀과 마케팅팀이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IT팀이 디지털화하도록 했습니다.

특히 밀레니얼 세대를 타깃으로 사내에 20~30대로 구성된 전략혁신위원회를 신설했습니다. 이들에게서 나온 아이디어를 직접 듣고 연구해 젊은 감각의 브랜드로 재탄생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지금 보고 바로 산다(See now, Buy Now)’라는 패션쇼 현장 직구 시스템입니다.

기존에 패션쇼에서 발표된 옷은 6개월 혹은 1년 뒤 구매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밀레니얼 세대 직원들은 ‘지금 사서 입고 싶은데 왜 1년을 기다려야 하나’라는 의문을 품었고 그들의 아이디어에서 시작해 패션쇼에서 보는 즉시 주문하고 대금을 지불하면 2주 안에 배송하는 시스템을 개발했습니다.

지금은 버버리 패션쇼에서 마음에 드는 옷을 입은 모델을 스마트폰으로 비추면 AR 기술이 적용돼 제품 모델명과 가격이 뜨고 페이 버튼을 누르면 데이터로 저장된 자신의 치수에 맞는 옷을 2주 안에 받아볼 수 있습니다. 아이디어와 기술의 융합을 통해 플랫폼으로 디지털 전환을 시도한 좋은 예입니다.

또한 고객의 데이터를 전 세계 모든 버버리 매장에서 볼 수 있게 했습니다. 어느 매장을 가도 회원 이름만 얘기하면 직원이 고객의 구매 이력 등을 보고 제품을 추천해 주는 디지털 플랫폼입니다. 매장에서 옷을 고르고 입어 보는 경험을 디지털 기술로 가능하게끔 디지털 매장을 구축한 것입니다.

버버리의 대명사인 트렌치코트도 변신을 시도했습니다. ‘나만이 원하는 디자인으로 만든 코트를 입을 수 없을까’라는 아이디어에서 착안해 약 120만 개의 트렌치코트 구성 조합을 플랫폼에서 고객이 원하는 대로 선택해 구매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리고 트렌치코트를 입은 사진을 올릴 수 있는 커뮤니티 사이트인 ‘아트 오브 더 트렌치(Art of The Trench)’를 만들어 인기를 확산했습니다.

아렌츠는 이와 같은 변화를 시도하는 데 있어서 애플과 스타벅스가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최고의 브랜드를 만든 것을 주목했고 여기에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시도해 버버리의 재탄생이라는 성공 스토리를 쓸 수 있었습니다.

이후 그는 2014년 버버리 CEO를 사임하고 430여 개의 점포와 온라인 스토어를 총괄하는 애플의 부사장으로 취임합니다. 애플이 그들의 전략을 배워 영국의 럭셔리 브랜드 버버리를 회생시킨 아렌츠를 부사장으로 영입한 이유는 아이디어와 기술을 융합한 플랫폼으로의 도전, 즉 융합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 디지털 리더십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 그리고 앞으로의 시대는 IT업계이든 아니든 융합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이 융합적 사고가 지난 100년간 이어온 전통 방식의 비즈니스를 바꾸고 있고 이로 인해 100년 된 기업이 10년 된 기업에 무너지는 사례가 종종 생겨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더욱 빈번하게 발생할 것이므로 이에 대한 대응을 준비하지 않으면 언제 축출될지 모르는 운명을 맞이할지 모릅니다. 


전기차와 소프트웨어 혁명

만약 필자에게 어디에서 자동차 업계의 가장 큰 변화를 느낄 수 있냐고 묻는다면 테슬라가 처음으로 온라인 판매를 시작한 후 기존 자동차회사들도 온라인 판매를 시작하는 것을 보았을 때라고 답변하고 싶습니다. 100년 이상 딜러들을 통해 판매되던 시스템이, 그것도 고가의 자동차를 인터넷 플랫폼에서 클릭 몇 번으로 사게 된 변화는 분명 큰 변화일 것입니다.

2012년 테슬라가 처음으로 고급 세단 전기차인 모델S를 선보였을 때 10년 만에 전 세계 자동차 시장의 판을 이렇게 바꾸어 놓을지 누가 예측했겠습니까. 2015년 모델S가 10만 대 팔렸을 때도, 2016년 자율주행 플랫폼을 처음으로 유료화했을 때도 자동차업계는 관망하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 전 세계 자동차업계는 전기차와 자율주행 플랫폼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고 이에 뒤처지면 기업의 존재마저도 위협받을 수 있다는 위기위식을 느끼고 있습니다.

지난해 세계 최고의 연간 생산량을 자랑하는 폭스바겐그룹의 CEO인 허버트 디에스는 기자회견에서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회사들의 시대는 끝났다. 한때 전성기를 누렸지만 이제는 기억 속에 묻힌 노키아처럼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테슬라가 주축이 되어 변화를 이끌고 있는 전기차와 소프트웨어 혁명이라는 변화의 흐름에 뒤처지면 기업의 도산까지도 각오해야 함을 피력한 것입니다.

2015년 엔비디아의 CEO인 젠슨 황과 테슬라의 CEO인 일론 머스크가 엔비디아 GTC(GPU Technology Conference)에서 자율주행 플랫폼에 대해 나눈 대화는 유명합니다. 머스크가 “곧 인간이 운전을 하면 불법인 시대가 올 것이다”라고 말하자 그 자리에 있던 수천 명의 관중은 모두 놀라움과 동시에 의심의 표정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점점 실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음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2012년 실리콘밸리에 소재한 자동차 연구소는 8개에 불과했습니다. 테슬라를 제외한 나머지 7개 연구소는 GM과 같은 내연기관 자동차회사들의 연구소였습니다. 하지만 2019년 자료에 따르면 실리콘밸리의 자동차 연구소는 170개가 넘으며 대다수가 전기차와 자율주행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 자율주행을 연구개발하는 스타트업도 400개가 넘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전기차와 자율주행의 실현이 가져올 후폭풍은 거셉니다. 엔진 및 주변 부품의 몰락을 시작으로 에너지 산업의 변화, 보험 및 법 개정, 카센터와 같은 내연기관 자동차 연관 산업의 소멸, 자동차 생산 대수 감소 그리고 차량 공유 서비스와 같은 모빌리티 서비스의 활성화 등 기본적인 자동차 비즈니스의 생태계까지 변화될 것입니다. 


기술과 비즈니스의 전문가가 필요한 시대

2011년 창설한 온라인 쇼핑몰회사 스티치픽스의 웹사이트를 접속해 보면 옷 사진이 하나도 없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이제 쇼핑은 AI 알고리즘으로’라는 슬로건으로 고객의 취향 및 패션 선호도를 조사한 후 인공지능 알고리즘으로 고객의 스타일을 분석해 5가지 패션 아이템을 집으로 무료 배송합니다.

고객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반송하면 되고 마음에 드는 아이템이 하나라도 있으면 디자인 비용과 옷 가격을 지불하면 됩니다. 알고리즘의 정확도를 높여 각각의 개인에 맞는 스타일링 서비스로 비즈니스를 이끌어 나가는 전략입니다.

실제로 배송을 받은 고객의 80%가 추천된 옷 중 최소 하나를 구입하고 첫 구매 후 90일 이내에 재구매를 진행하며 자발적으로 유튜브에 언박싱 동영상을 올려 바이럴 마케팅을 해주고 있습니다. 스티치픽스는 올해 총매출 2조 4500억 원, 순익은 350억 원을 예상하고 있으며 기업가치는 5조 1100억 원에 달합니다.

스티치픽스의 CEO인 카트리나 레이크가 처음 이 사업을 구상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자문을 구했을 때 모두가 제정신이냐고 반문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데이터를 활용해 고객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게 되면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는 기존 업체보다 더 빨리 재고를 처리할 수 있다. 고객이 찾을 만한 제품을 사서 원하는 고객에게 그 제품을 팔 수 있기 때문입니다. 판매자에게 바로 현금 결제를 해줄 정도로 재고 처리가 빠르다면 자본 효율성이 매우 높은 모형이다”라고 자신의 전략을 정의했습니다.

이처럼 AI 데이터 분석 알고리즘으로 정확도를 높여 구매 경우의 수를 높인다는 생각은 어쩌면 기존의 전통적인 패션업체가 생각하기엔 불가능한 아이디어일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기업인들은 해당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하면서 축적된 성공 경험, 노하우 그리고 위기 극복 능력을 갖추고 있고 그래서 한편으로는 새로운 생각과 도전에 막연한 거부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변화라는 것은 사물의 성질, 모양, 형태가 바뀌어 달라진 상태를 일컫습니다. 즉 변화를 원한다면 시도를 한 후 그 결과까지 확인을 해봐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의 변화는 기술과의 융합을 의미합니다.

결국 지금은 기술을 이해하고 기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비즈니스 전문가가 더욱 필요한 시대입니다. 회사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전략에 맞는 기술을 채택해 융합의 플랫폼으로 이끌어 나갈 기술 전략 전문가, 즉 기술 전략 기획자(Chief Technology Strategy Officer)가 있다면 미래의 변화를 만들어 나가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입니다.

“기업의 실패 이유는 미래를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는 구글의 창업자 래리 페이지의 말을 끝으로 전하며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실현하기 위해 디지털 리더십을 발휘할 전문가와 함께 미래의 변화를 이끄는 모습을 기대해 봅니다. 

 

이용덕 드림앤퓨처랩스 대표 davlee@dreamnfuturelab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