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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밈, 소비자 파워의 탄생

 

3년 전 나왔지만 혹평과 함께 사라져 버렸던 비의 노래 ‘깡’이 음원 차트에 재진입하는 기현상을 만들었습니다. 패러디 영상이 다시 발굴해 낸 ‘깡’은 무수한 댓글들이 일종의 놀이처럼 붙는 ‘밈(Meme) 현상’을 일으켰습니다. ‘인터넷 밈’이라 불리는 이 새로운 현상은 뭘 말해 주는 걸까요.

“1일 1깡은 부족해요. 적어도 1일 3깡은 해야지.” 이제 아는 분들은 다 아는 ‘1일 1깡’이라는 말은 하루에 한 번씩 가수 비의 ‘깡’ 뮤직비디오를 봐야 한다는 데서 나온 말입니다. 워낙 화제가 돼서 MBC ‘놀면 뭐하니’에 출연한 비는 한술 더 떠 ‘1일3깡’을 얘기했습니다. “아침, 점심, 저녁을 먹고 ‘깡’ 뮤직 비디오를 봐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3년 전 발표된 비의 노래 ‘깡’이 지금 화제가 되고 있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당시만 해도 너무 과한 춤과 설정으로 시대에 뒤떨어졌다며 혹평을 받았고 심지어 조롱 섞인 반응들까지 나왔던 곡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곡은 지난해 11월 한 여고생이 올린 패러디 영상에 의해 부활했습니다. 약 20초 분량으로 과장된 비의 춤과 뮤직비디오 영상을 따라한 이 패러디는 순식간에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덩달아 비의 ‘깡’ 뮤직비디오에도 불을 붙였습니다. 1600만 조회 수를 넘긴 뮤직비디오에는 16만 개가 넘는 댓글이 붙었습니다.

이미 우리 가까이 있었던 인터넷 밈

‘1일 1깡’, 나아가 ‘1일 3깡’을 하게 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이 댓글 보는 맛이 쏠쏠하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놀이 공간처럼 되어버린 댓글 창은 비에게 다양한 금지 항목을 이야기하고 충고를 하는 내용들로 ‘인터넷 밈’ 현상이 생겨났습니다.

어찌 보면 그건 비판을 넘어 조롱 섞인 댓글 놀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당사자인 비가 나서서 자신도 즐기고 있다고 선선히 말함으로써 신드롬을 더욱 확산시켰습니다. 비는 이로써 화제의 중심으로 떠올랐고 ‘깡’이 들어가는 과자 광고를 찍는 등 의외의 성취들을 만들었습니다.

본래 ‘밈’은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에서 사용한 용어로 신체적 유전을 넘어 종교, 사상, 문화 같은 정신적 사유 활동까지 유전되고 전파되는 현상을 일컫는 말입니다. 여기서 따와 이름 붙여진 ‘인터넷 밈’은 ‘기존의 콘텐츠가 대중을 통해 유통되고 재생산되면서 생기는 문화적 요소’의 의미입니다.

‘온라인 탑골공원’이 대표적인 인터넷 밈입니다. 1990년대 음악 프로그램을 온라인으로 가져와 일종의 댓글 놀이를 하는 온라인 탑골공원은 인터넷 밈 현상을 통해 잊혔던 과거의 가수들까지 현재로 소환해 낸 바 있습니다. ‘탑골 GD’로 불리는 양준일이 대표적입니다.

최근 유튜브 등을 통해 발굴되고 유통되는 일명 ‘짤방1)들은 지나간 콘텐츠 속 배우들을 화제의 인물로 끌어올리기도 했습니다.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김두한 역할을 하며 “사딸라!”를 외쳤던 김영철과 영화 타짜에서 “묻고 더블로 가!”라는 대사로 화제가 된 김응수가 그들입니다. 두 사람의 짤방이 일으킨 인터넷 밈은 이들을 난데없는 화제의 중심으로 끌어올렸고 광고 모델로도 나란히 주목하게 만들었습니다. 
 

인터넷 밈과 소비자 파워

대중문화의 새로운 소비 방식으로 등장하고 있는 인터넷 밈은 어떤 의미에서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공간이 생겨났을 때부터 이미 예고된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일방향으로 흐르던 정보가 이제는 양방향으로 소통되기 시작하면서 생산자에서 소비자로만 흘러가던 흐름이 이제는 거꾸로 소비자에 의해 흐름이 만들어지는 방식으로까지 바뀌게 된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인터넷이 처음 생겨나던 그 시점에서도 사진 패러디나 UCC 같은 것이 이미 존재했습니다. 그만큼 이 공간은 소비자가 능동적으로 참여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깡’ 신드롬처럼 콘텐츠 소비에 있어서 지난 콘텐츠를 재발굴하는 방식은 그래서 이미 가장 쉽게 소비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저 재기발랄한 댓글을 붙이는 방식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최근의 인터넷 밈은 이제 일상으로 다가오고 있는 동영상으로도 확산되고 굳이 옛 콘텐츠가 아니라 현재 등장한 콘텐츠의 마케팅 방식으로도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 지코의 ‘아무 노래 챌린지’가 그 성공 사례입니다.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춤 동작이 ‘틱톡’ 같은 쉬운 동영상 앱을 만나 이뤄진 시너지는 실로 엄청났습니다.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이효리나 강민경 같은 셀럽들이 참여하면서 급속도로 확산된 이 인터넷 밈은 ‘챌린지’라 불리는 일종의 캠페인 방식으로 전개되며 화제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이 인터넷 밈을 활용한 챌린지는 최근 ‘아이스 버킷 챌린지’나 ‘덕분에 챌린지’처럼 의미 있는 일에 동참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어 영향력을 넓히고 있습니다.

결국 인터넷 밈이 말해 주는 건 소비자 파워입니다. 프로슈머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공급에 참여하는 소비자의 힘은 이미 알려진 바지만 인터넷 밈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죽었던 콘텐츠도 선택되어 부활시키는 완벽한 소비자 중심의 새로운 시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 


 1) 짤방 : ‘잘림 방지’의 줄임말. 사진이나 동영상을 올리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주제에 벗어난 글을 작성했을 때 자신의 글이 삭제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함께 올리는 사진이나 동영상을 뜻한다. 최근 온라인에서는 글에 첨부된 이미지를 통칭하는 말로도 쓰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