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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나리’, 경쟁력이 된 로컬 문화

 

지난해 선댄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과 관객상을 받으며 주목받기 시작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등 무려  100관왕을 수상하며 글로벌한 호응과 공감을 이끌어 내고 있는 영화 ‘미나리’. 한국계 미국인 감독이 만든 미국 영화지만 우리말 대사가 대부분인 ‘미나리’의 성공은 무얼 말해주고 있는 걸까요.

 

정이삭 감독의 영화 ‘미나리’는 개봉 전부터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쏟아진 찬사로 이미 성공을 담보한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에 출연한 윤여정은 ‘한국의 메릴 스트립’이라는 칭호로 소개되었고 한국 배우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품에 안았습니다. 우리에게는 지난해 ‘기생충’을 잇는 올해의 쾌거로 기록되었습니다.

미나리는 이미 미국 내에서 작품에 대한 인정은 여러 수상은 물론이고 현지 언론들의 반응을 통해 입증되었습니다. 그러니 ‘기생충’에 이은 ‘미나리’의 잇따른 성공은 이미 한국 문화에 대한 글로벌한 관심을 만들었다고도 선언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미나리’라는 작품이 가진 문화적 태생이 흥미롭습니다. 이 영화는 브래드 피트의 제작사 플랜B가 제작한 작품입니다. 그래서 영화 소개에는 ‘미국’ 국적이 적시되어 있습니다. 남자 주인공인 스티븐 연은 미국 드라마 ‘워킹데드’를 통해 잘 알려진 한국계 미국 배우입니다. 또 이제 겨우 9살의 나이로 데이빗 연기를 천연덕스럽게 해내 연기 천재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 앨런 킴 역시 미국 배우입니다. 정이삭 감독 역시 한국계 미국인입니다.

즉 ‘미나리’의 문화적 태생은 ‘미국 이민을 선택한 한국인’이라는 점에서 미국과 한국의 유전자가 뒤섞여 있습니다. 한국말이 대사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미국이라는 낯선 땅에서 마주하게 되는 현실들은 너무나 미국적입니다. 이민자들이 마주하게 됐을 막막함과 노력해도 늘 제자리만 맴도는 현실이 주는 절망감 같은 것들이 영화 곳곳에서 묻어납니다.

이 영화의 제목이자 중요한 모티브인 미나리는 그래서 그 자체로 한국 이민자들의 삶을 은유하면서 동시에 이 영화 자체가 가진 문화적 태생을 의미합니다. 어느 곳에서나 잘 자라고 김치에도 들어가 맛 좋은 음식이면서 때론 약이 되기도 하며 주변의 물까지 깨끗하게 만들어 주는 미나리의 생태가 그것입니다. 미국이라는 낯선 사회에서 적응해 가며 그 사회를 위해 기여하기도 하는 이민자들의 삶도 그렇지만 할리우드 전통의 미국 영화 풍토 속에 스며들어 가치를 인정받은 이 영화 역시 미나리를 닮아 있습니다.


글로벌 문화의 중심에 선 로컬의 힘

태생적으로 미국은 이민자들의 국가일 수밖에 없지만 늘 영어권 백인이 주류문화를 독식하던 나라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미나리’가 미국 사회를 배경으로 하면서 소수로 취급받던 한국 이민자들의 삶을 다뤄 현지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는 건 흥미로운 변화인데요, 그것은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석권으로 상징되는 것처럼 주류에 의해 소외되어 왔던 로컬 문화들이 이제 오히려 주목받는 시대의 변화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기생충’이 반지하 같은 미국인들에게는 생소한 우리네 문화를 소재로 삼아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양극화라는 보편적인 공감대를 불러일으킨 것처럼 ‘미나리’는 이제 로컬 문화를 가진 한국 이민자들이 미국이라는 낯선 곳에서 부딪치고 깨지면서도 다시 일어나 살아가는 삶을 통해 미나리 같은 인간의 ‘끈질긴 생명력’이라는 보편적인 공감을 그려냈습니다. 

최근 몇 년 간 영화, K팝, K드라마들 같은 K콘텐츠들에 대한 해외의 관심이 쏟아지게 된 건 이 작품들의 완성도나 가치가 뛰어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현재 이른바 글로벌 시대의 도래가 요구하는 로컬 문화로서 K콘텐츠가 주목된 이유도 존재합니다.

‘킹덤’ 같은 ‘조선 좀비’ 붐을 일으킨 드라마가 가진 경쟁력은 조선시대라는 로컬의 색깔이 분명하면서도 동시에 좀비라는 보편적 장르가 가진 익숙함과의 조화에서 비롯됐습니다. 이런 경향은 방탄소년단이 팝의 본고장인 미국의 트렌디한 팝을 가져와 우리 식의 아이돌 콘셉트를 더함으로써 글로벌 경쟁력을 갖게 된 것에서도 드러납니다. 


전 세계 로컬 문화를 어떻게 흡수할 것인가

글로벌 시대의 경쟁력은 그것이 문화 콘텐츠이건 아니면 하나의 글로벌 상품이건 상관없이 저마다 가진 로컬 문화에서 찾아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미 이런 사례는 음식 분야만 들여다봐도 쉽게 이해됩니다.

베트남 쌀국수는 이제 전 세계 어디서든 먹을 수 있는 글로벌 로컬 문화가 된 지 오래인데요, 프랑스의 바게트나 멕시코의 타코 같은 음식들도 이미 오래 전에 글로벌하게 전파된 로컬 문화들입니다. 하지만 지금 주목되는 건 이렇게 이미 주류가 된 문화들이 아니라 그간 소외되었던 로컬 문화들입니다. K콘텐츠와 더불어 K푸드들이 글로벌하게 각광받고 있는 건 콘텐츠의 영향이 적지 않지만 동시에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우리네 음식에 대한 ‘새삼스러운’ 관심 때문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우리가 우리의 문화를 끌고 와 이를 콘텐츠화하거나 상품화해 해외에 선보이는 단계지만 향후에는 우리만이 아닌 전 세계에 숨겨진 로컬 문화를 어떻게 우리 식으로 끌어와 흡수하고 소개하는가가 관건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미나리’의 사례는 바로 이걸 말해줍니다. 미국 영화지만 한국이라는 로컬 문화를 이민자라는 시선으로 흡수해 끌어안음으로써 글로벌한 성공을 만들어 낸 것이 바로 ‘미나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 글로벌 시대에 산업은 어떻게 하면 다양한 로컬 문화들을 발굴해 낼지가 중요한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 것만이 아니라 타국의 문화라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정덕현 대중문화칼럼니스트 thekian1@gmail.com